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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 서울수복 전초지, 장택상 별장터> 상세보기 - 제안,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현황 및 문제점, 개선방향, 기대효과, 소요예산, 첨부파일 정보 제공
교육 < 3.15 서울수복 전초지, 장택상 별장터>
작성자 : 시흥4동 주민 작성일 : 조회수 :0
현황 및 문제점 장택상 씨는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 시절 경무부 수도경찰청장(서울 경찰청장 전신)을 시작으로 1950년 국회부의장, 1952년 국부총리, 1954년 국회의원(경북 칠곡) 등 줄곧 공직을 맡아 국가 발전에 헌신했던 분입니다. 금천구 시흥 5동 00 아파트 부근에는 ‘장택상 별장터’라는 표지판과 별장이 있었던 마을임을 알리는 시계탑이 서 있습니다. 장택상 씨의 별장터를 금천구민과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한 공인의 별서가 있었던 곳으로만 소개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개선방향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공산 침략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웠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대한민국은 38선 너머 북녘 땅으로 진군하였고,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압록강가에 도달하는 감격스러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군은 중공군 개입이라는 큰 악재를 만났고, 조중연합사령관 팽덕회가 지휘하는 공산연합군에 밀려 다시 서울을 내주고 37선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선엽 국군 1사단장은 1.4 후퇴 당시 안성에 사단사령부를 꾸리고 전투를 지휘하면서 서울을 재탈환할 것을 기도했습니다. 백선엽 사단장은 1951년 2월 하순경 1사단 휘하 우수한 부하들을 선발하여 중공군들이 어슬렁거리는 한강 건너 서울의 전세를 탐지할 사명을 부여했습니다. 백선엽 사단장은 몸소 선발 군인들과 관악산 기슭 장택상 별장에 ‘서울탐지사령부’를 꾸미고 한수이북 서울을 조망했습니다. 마침내 3월 15일 북한 인민군과 중공인민지원군에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수복하였습니다.
기대효과 김신조 사건이라고 불리는 1968년 1.21 사건을 기억합니다. 구기동 뒤편 북한산 사모바위 옆 너럭바위 밑에는 사건 당시 공비들이 몸을 숨겼던 곳임을 알리는 밀랍 인형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금천구 시흥5동 장택상 별장터나 시계탑 옆에 백선엽 장군의 명을 받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울에서 작전을 수행했다는 간단한 표지판이라도 건립할 것을 건의합니다.
소요예산 5백 만원
첨부파일

제안상태

  1. 01 투표대기
  2. 02 구민투표
  3. 03 실무부서 검토
  4. 04 채택
  5. 05 실현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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